[D+117] 드디어 번호를 교환하다!
2018.09.13
오랜만에 유이만나기로 한날!! 시티 나가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았다.
그저께 못잔 잠까지 피곤이 누적되어있었지만 요즘 즐겨보는 알렉스의 higherself라는 유튜브를 들으면서 의식수준을 높이기위해 게으름 피우지않으려 노력했다.
드디어 그동안 사재꼈던 새 옷 중 하나를 개시하는날!! 무난한 회색 티에 가디건을 걸칠까 했지만 한번 사는 인생 이쁜 옷 맘껏 입어야하지않겠나해서 완전 튀는 노란 니트를 아끼지않고 꺼내입었다. 머리까지 하고 나가려고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풀 메이컵과 힐로 만족했다. 아 오랜만에 착용한 목걸이도.
얼마만의 외출인지 한껏 꾸미고 나오길 잘한 것 같다. 휴일 기분을 만끽했다.
유이와 함께 스카이타워 근처 글로리아진스로 갔다. 그동안 쌓인 서로의 소식을 털어놓았다. 유이도 나만큼이나 일하느라 바빴다. 투잡을 하다보니 밥도 잠도 제대로 해결을 못해서 포진까지 생겼단다. 그래도 일본음식점 알바는 이번주까지라니 다음주부턴 같이 저녁에 바도 가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클리닝 이번주가 마지막이니 ㅎㅎ
벨라에게 메시지가 와서 빵 터졌다. 벨라가 외출했다가 집에오니 미키는 안보이고 우는 소리만 들리길래 2층에 올라와보니 내 방에 갖혀 못나오고 있더란다 ㅋㅋㅋ 나올때 방문을 제대로 안닫고 나왔는지 내 방에 들어가서는 또 문은 어떻게 닫았는지 자고있었단다.
오늘 원래 스시집 같이 일하는 ㅇㅎ이랑 헬스장 같이 가려고했는데 어찌하다보니 시간도 애매하고해서 그냥 시티에서 보기로했다. 유이랑 도서관 갔다가 거기서 그냥 기다렸다. 별 생각 없이 기다렸는데 사복으로는 서로 처음 만나서 그런지 얼굴보니까 갑자기 순간 어색하고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ㅋㅋ 어리버리 애 같았는데 아주 잠깐 남자로 보였다 ㅋㅋㅋ
유이가 한국인인줄 알았는지 한국말로 인사하길래 영어로 설명해줬다. 유이 집 쪽으로 같이 걸어가는 길에 계속 영어로만 대화했다. 여러 국적으로 섞여있을때 영어가 아닌 자기 나라 언어로만 얘기하는게 정말 싫어했기때문에 나도 그러기싫었다. 그치만 평소에 늘 한국어로만 대화하던 한국인들끼리 영어를 쓴다는건 역시나 어색했다.
ㅇㅎ이랑 반상에 갔다. 내가 아는 곳중 제일 만만한게 반상이다 ㅋㅋㅋㅋㅋㅋ 물론 스테이크 집도 있고 오늘 유이에게 들은 멕시코카페도 있지만 할인되는 시간대 이외엔 비싸니깐...
같은 고향 출신에 대학까지 같아서 그런지 너무도 편안했다. 물론 테이블에 앉아서 처음엔 둘다 서로 살짝 어색함이 느껴졌지만 대화도 잘 통하고 공통된 주제(스시집)가 있어서 그런지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밥 다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계속해서 서로 살아온 얘기, 취미 얘기, 가치관 얘기, 스시집 이모들 얘기 등등 대화를 할 수록 정말 괜찮은 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동생으로 두면 정말 좋을 것같았다. 그러고보니 뉴질랜드 와서 한국인 워홀러들을 항상 멀리해 왔었는데 ㅇㅎ이는 워홀러들 특유의 이기적인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굳이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안들었던 것 같고. 그러고보니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한국애들이 전부 남자다.
ㅇㅎ이랑 얘기하다보니 이매니저는 정말 인간 이하의 생각수준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비하발언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단다. 심지어 요즘 계속 집중적으로 갈구는 조용하고 착한 이모에게 장애인이냐는 소리까지 한단다. 속으로 썩어도 단단히 썩어 빠진 사람인 것같다. 싫은 말 절대 못하고 너무 착한 이모라 혹시나 칼부림 나지는 않을까 걱정이라니까 ㅇㅎ이도 같은 생각했단다.
이매니저가 뒤에서 말도 안되는 헛소리 할때 ㅇㅎ이가 가끔 핵 사이다 발언을 해서 이매니저는 아무말 못하고 다른사람들은 빵터지고 할 때가 있단다.
태국이 좋아서 태국에 있는 영국계 회사에 취직해 일하고 또 뉴질랜드 오기전 1년은 제주도에있는 IT회사에 취직하고싶어서 무작정 제주도에서 살았단다. 참 나만큼이나 살고싶은대로 사는 아이인 것 같다. 워홀와서 만난 한국 남자애들 중에 영어도 이만큼 하는 애를 처음봐서 신기했다 ㅋㅋ
오늘은 드디어 마커스가 출근하는날이다! 백스터에 도착하니 7시. 이쁘게 하고 온 김에 화장 지우고 구두 같아 신기전에 마커스와 마주치고싶었지만 다른 직원들의 눈총만 받을 뿐이었다. 어제 봐둔 스케줄 표에서 오늘 마커스는 REC 담당이었는데 도대체 REC가 뭔지, 어느 포지션인지 알수가 없었다. CDSC룸에는 마커스랑 비슷한 덩치가 한명 보이긴했는데 평소와 다르게 전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내일이 마지막날이라 오늘 무조건 이야기 나누고 번호를 따야하는데 계속해서 초조해졌다. 속으로 시뮬레이션만 계속 되뇌였다.
“그동안 어디있었니?”, “나 내일 마지막이야”, “대타였거든”, “번호 알려줄수있어?”
필레 담당 룸까지 청소해야하는 날이었지만 마커스가 언제 나타날지몰라 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9시 다되갈때쯤부터 싸인하는 서류들을 꺼내 초조한 마음으로 깔짝거리고있었다.
그러다 무심코 뒤를 돌아봤더니 어느샌가 일을 마치고 조용히 내 뒤에서 손을 씻으러 걸어오고있는 마커스가 보였다. 마커스도 놀랐는지 웃으며 인사하는데...하...
3일동안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했건만.. 한순간에 무너졌다. 마음에 여유라곤 다 사라져서 마커스가 건네는 인사도 무시한채 내 할말만 해버렸다. 그동안 어디있었냐는 질문에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당황스러워하며 3일동안 휴가였다고 미션베이도 가고 여기저기 놀러다녔단다. 날씨도 화창하고 정말 행복했단다. 그치만 나는 지금 휴가 얘기를 듣고있을 때가 아니었다. 마음이 급했다. 뭔가 나에게 질문을 한것 같은데 무시하고 내 시나리오대로 내일이 마지막이라는 얘길 했다. 그랬더니 놀라면서 왜 계속 일 안하는거냐고 물었다. 대체인력이었다니까 아쉽다면서 어학원은 도대체 시티 어디있는거냐고 물었다. 더이상 학생도 아니면서 계속해서 거짓말로 학생인척 할 수밖에없었다. 뭐가 그리 자신이 없는지...ㅠ 왠지 학생이 아닌 그냥 일만하고 사는 워홀러라고하면 매력이 없어보일 것 같았다. 그냥 외노자 청소부인 샘이니까..
암튼 막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얘도 나처럼 계속 대화나누고싶어하는 느낌이들었지만 수동적으로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냥 대놓고 번호를 물어봐 버렸다.
질러버렸다...!!!
아마 누군가는 들었을지도 모른다. 내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기억이 나질 않기 때문에...
시뮬레이션 돌려왔던 3일 동안 혹시 거절하면 어쩌지, 여자친구가 있다거나 와이프가 있다고하면 어쩌지, 또는 심지어 번호달라는 내가 부담스러워 머뭇거리면 어쩌지 별별 걱정을 다 했었는데... 왠걸! 생각했던것보다 흔쾌히 Sure!이라고 하는 모습에 순간 이성을 놓아버리고 10대때 처럼 거의 팔짝팔짝 뛸 것 처럼 함박 웃음을 머금고 기다렸다는 듯이 티슈와 볼펜을 넘겨줬다. 번호 쓰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심장이 떨어져 나갈것만 같았다. 좋아하는거 표정에서 다 들어났을지도 모르겠다ㅠ
그뒤로 대화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절할듯 너무 설레였던 기억밖엔. 번호 받고나서는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티슈를 받고선 손이 덜덜덜 떨렸다. 다리까지 후달거려 서있을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펜이 번질까 티슈를 꽉 쥐지도 못한 채 소중히 간직하고선 깔짝거리던 싸인을 후다닥 해치워버리고 바로 탈의실로 가서 문자를 보냈다. 혹여나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곤란해할까봐 친절하게 내 이름도 확실하게 적어서 보내줬다.
내가 해냈다..! 뭔가 엄청난 걸 해낸기분에 날아갈것같았다. 청소가 정말 순식간에 끝났다. 기분상으로 뿐만 아니라 어제에 비하면 시간도 30분이나 빨랐다. 청소하는 내내 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기분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떨어졌을 때의 충격이 크다는 걸 알기때문에.
그냥 일단 친구부터 되는거라고 되뇌였다. (그치만 괴성을 지르고싶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망상들(김칫국)을 누르느라 힘들었다. 그럴때 일부러 ㅇㅎ이와 오늘 나눈 대화들을 떠올렸다. ㅇㅎ이와도 즐거운 시간이었으니.
CDSC룸 청소하는데 오늘따라 밖에 마커스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평소때같았으면 쓰레기 버리고 동료들이랑 이야기 나누느라 계속 돌아다녔을텐데 집에 일찍 간건지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사무실쪽에 있던 마커스를 부르는 걸 발견했다. 마커스 모습이 보이고 나는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이고 청소에 열중했다. 그러다 조금뒤 고개를 들었는데 쓰레기장쪽으로 가던 마커스와 눈이 마주쳤다. 놀래서 순간적으로 눈을 피했다가 다시 봤더니 또 눈인사를 하는 마커스. 아니 아까 실컷 인사하고 대화 나누고 번호까지 줬으면서 또 인사라니 ㅋㅋ 마커스의 스타일인건지... 망상 그만하자ㅠ
청소를 끝내고 탈의실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폰을 봤더니 마커스에게 조금전에 답장이 하나 와있었다. 집에간지 2시간만에 답을 했었다. 아주 심플하게.
한국의 수많은 계산적인 남자들과는 다를거라는 희망을 품고 밀당따위, 계산따위는 하지말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솔직하게 행동하자고 마음 먹었다. 물어보고싶었던거 궁금한거 다 물어보고 문자 답장도 바로바로 했다. 마커스도 나에대해 질문이 많았다. 아주 잠깐의 대화였지만 서로 계속해서 질문하고 대화가 끊어지지 않았다. 마커스의 악센트를 듣고 예상한 대로 뉴질랜드에서 나고 자랐단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자기 부모님들의 출신지가 어딜지 맞춰보란다. 전에 잠깐 생각 했었던 라오스 출신이시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빵터졌다 ㅋㅋ 누구도 예상한적 없는 나라라고 ㅋㅋ
그리고는 내일 계속 추측해보라며 이제 자러간단다. 늦출이라 늦게 자는줄 알았더니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아이인가보다. 아쉬웠지만 알겠다고, 내일 만나자고 했다. 마커스의 성 Fischer를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스위스와 독일의 유명한 누군가의 이름이라고 나온다. 역시 난 똑똑해 ㅎㅎ
마커스는 내가 자기 성까지 알고있다는걸 모를테니 내일 성을 물어본 후 스위스랑 독일을 말해봐야겠다 ㅎㅎ 놀라겠지?
대화를 하면서 자기얘기만 하는 게 아닌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들을 만난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ㅊㄹ이, ㅇㅎ이, 유이, 마커스... 외국애들은 내 영어가 부족해서인 이유도 있겠지만 다들 상대방과 가까워지고싶어서 진심으로 서로에 대해 질문하는 그런 느낌이 너무도 안정감을 줬다. 한국친구들과는 서로에게 하는 질문들이 알고보면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위한 밑밥이라해야할까. 질문해놓고 내 이야기를 듣기보다 답정너처럼 자신의 이야기부터 한다거나 내 대답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가르려고 한다. 멀~리 뉴질랜드 땅에서 한국인들을 바라보니 정말 여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있는게 보인다. 9시출근 6,7시 퇴근. 여기랑 별반 차이없는데도 여유가 없는 걸 보면 확실히 시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한국의 사회구조와 유교문화에 영향을 받은 인간관계가 문제일 것이다. FM이라는게 정해져있는 인생의 타임테이블과 관계맺고있는 모든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문화가 가장 심각한 것같다.
페미니스트가 뭘까.
검색해 본 바론 특별히 큰 뜻은 없다. 남녀평등주의자. 여성이 남성들의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여자들도 남자들 만큼 교육, 직업, 정치에서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잘못된 것 하나 없는 뜻인데도 요즘 국제적으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왜 그렇게 다들 흥분하고 도마에 올리는 걸까?
걔중에 잘못된 페미니스트들이 남녀평등을 넘어 남성을 지나치게 혐오하고 오히려 여성주의자에 가깝게 행동하는 모습이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원래 정의에 의하면 나도 페미니스트에 속하는 여성인 것같다.
이것과는 별개의 얘기로... 나는 참 한국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여성의 특성과는 반대로 태어난 것같다. 외적인 모습이 아닌 내적으로 말이다.
관심가는 남자는 무조건 쟁취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내가 먼저 번호를 물어보거나 관심을 표현한다. 사귈때도 남자에게 사랑을 갈구하기보다 오히려 내가 주는 입장이고 애초에 남자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때문에 일과 연애는 확실히 구분짓는다. 또 남자가 한눈팔까봐 걱정하기보다 오히려 내가 더 걱정이된다. 결혼에 있어서도 집 안에서 살림을 하며 사는 것 보다 나가서 돈을 벌고 사회생활하는 것이 훨씬 나와 잘 맞다. 집에오면 살림하는 남자가 날 반겨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자들이 결혼을 하면 마음에 안정을 찾고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된다는 말이 격하게 이해가된다. 나 또한 남자친구가 생기면 마음에 안정이 찾아지고 아무 걱정 없이 내 미래를 위해 100% 마음을 쏟아부을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