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막바지
날이 더워져서인지, 매일같이 운동을 다녀서 그런지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던 하루다.
아직 연말연시 연휴로 휴가를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아서인지 스시집은 여전히 한가했다.
얼마 전 어떤 손님이 스시를 사러 와서 실비아파크에서도 나를 봤다며 반가워한 적이 있다. 잘생긴 동양인 남자라 호감이 갔었다. 지난 주는 연휴라서 못보고 오늘 오랜만에 스시를 사러 왔다. 입구 들어오면서부터 날 보며 환하게 웃는다. 새해 잘 보냈냐고 묻길래 연말연시 여기 스시집도 문을 닫아서 푹 쉬고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계속 출근을 했다며
연휴동안 이 근처 문 연 가게가 없어서 밥먹을 곳이 없었다며 투정을 부린다. 그러면서 내 이름을 물어본다. 좀 당황스러웠다. 가게 특성상, 그리고 한국인들 특성상 손님이랑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모든 관심이 주목되서 엄청 신경이 쓰였다. 내 이름을 알려주니 역시나 발음을 제대로 못한다. Tom이라는 그 남자는 중국인인 것같기도 하고, 영어 악센트로도 잘 구분이 안되었다. 얼마 전에 또 한번 실비아파크에서 나를 발견했지만 혹시 방해될까 그냥 물건만 사고 갔다는 얘길 한다. 다음에는 꼭 인사해 달라고 했다. 왠지 나랑 친해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내가 일하는 키위 카페와 한인 스시집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카페에서는 직원은 손님에게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일 뿐 모두 다 친구라는 생각이 강한데 반에, 스시집은 손님과 직원 사이가 철저하게 분리되어있다.
스시집에서 직원은 스시를 만들고 제공해주는 개체일 뿐이고 손님은 그것을 사가기위해 가게를 잠깐 들르는 개체일 뿐이다. 손님과 직원의 관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손님과 일 이외의 대화(날씨, 오늘의 기분,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등등)를 나눈다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문화충격인 것이다.
내가 만약 카페에서 손님들과 이런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않고 계산과 물건 내주는 것에만 집중을 했더라면 오히려 테브에게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방금 손님의 표정은 제대로 보긴 했냐고, 손님들은 이곳에 단지 빵과 커피를 사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고. 정말 테브 말이 맞다. 빵과 커피를 파는 곳은 우리 카페 말고도 근처에 넘치고 넘쳤다. 우리 카페가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직원들 한명한명이 모두 개성넘치고 친절할 뿐만아니라 유쾌하며 모든 손님과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페 일을 시작하고 많이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운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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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도 오늘 그리 바쁘지않았다. 금요일인데 밋업도 없고 조용했다. 마사는 이제 다음 주면 마지막이다. 하필 한국친구와 남섬 여행가 있는동안 떠난다. 돌아와서 마사 없는 카페는 너무 허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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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t 단톡방에 쉐인의 메시지가 또 올라왔다. 전자렌지 문이 또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벌레를 잡았다고. 아마도 내가 까먹고 또 열어두고 나온 모양이다. 사키는 쉐인의 메시지에 본인이 열어둔거 아니라며 그 증거로 아침에 뭘 먹었는지 상세하게 묘사해가며 부인했다. 사키가 먹는 음식들의 냄새가 유독 심해서 전자렌지를 열어놓지 않으면 다음번에 사용할 때 내 음식에까지 냄새가 베는 것 같다. 미안하다고 하고 다음부턴 잘 닫아놓겠다고 했다.
나도 그닥 깨끗하고 깔끔한 편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적당히 지저분한 이 집을 골랐던 건데 이제와서 갑자기 엄청 청결을 강조하니까 당황스럽다. 여행에서 돌아오는대로 새 플랫을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