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 집 일 마치고 가게에서 점심을 먹으며 실비아파크 매장 소식을 듣게되었다. 캐셔들 중 지은이라는 애 빼고는 전부 노티스를 냈단다. 그런 지옥같은 곳에 오래 남아 있는 사람들보면 결국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거란 생각이 든다.
카페에 출근했는데 왠걸, 유이가 와서 2층에 앉아있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름을 불러보았더니 맞았다. 지난 주말에 프랑스 마켓에서 만난 이후 일부러 나를 보려고 찾아왔다고 한다. 그 동안 종종 왔었는데 올 때마다 내가 없었단다. 최근 몇달동안 일하면서 일본인들과 지내서 그런지 영어가 많이 줄어든 느낌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표정이 뭔가 마음에 걸리는게 있는 듯이 불편해 보였다. 역시나 그날 같이 있던 남자는 누구냐고 묻는다. 그냥 가볍게 만나고 있는 남자라고 대답했다. 유이는 곧바로 또 미팅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가는 뒤통수에 대고 연락하라며 크게 소리치긴했는데 나를 어색해하던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오늘따라 카페는 정말 한가했다. 마사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일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2주 후면 마사도 떠난다.. 스시집 같이 일하는 ㅅㄹ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마사와는 앞으로 못 볼거란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아팠다. 그러고보니 오늘 카페 놀러오기로 한 ㅇㅎ랑 ㅅㄹ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워홀을 했던 마사는, 이쁜 한국 여자들이 정말 많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안예쁘냐고 물었더니 전혀 아니란다. 일본 여자애들은 백인한테 인기가 많아서 외국 한번 나갔다 온 여자애들은 자기가 정말 매력적인 줄 안단다. 일본여자가 백인에게 인기많은 이유는 Easy to hook up이라는 마사. 이 말을 듣고나니 Good Yellow Fever와 Bad Yellow Fever의 차이가 분명해졌다. 동양인들의 외모를 예쁘다고 생각하고 동양의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동양 여성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동양인이기때문에 백인들을 무조건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동양 여성에게 순종적이고 말도 안되는 성적 판타지를 가지는 것이 바로 Bad Yellow Fever가 아닐까.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는데도 동양 여성에게 집착하는 백인들이라면 한번쯤 Bad Yellow Fever로 고려해봐야하지 않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크리스찬이 이전에 만난 동양여자친구들의 영어 실력은 어느정도였을까.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에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을까. 나에게 있어서 남자친구는 서로의 가치관이 잘 맞고 정서적으로 깊이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과연 한국에서 만난 사람이었어도 이렇게 선뜻 호의를 베풀고 적극적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쉐인에게 문자가 왔다. 이번에도 청소 얘기다. 요즘들어 청소문제에 엄청 예민해졌다. 내가 이사 올 때부터도 심각하게 더러운 집이었는데 왜 갑자기 청소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급 이사나가고 싶어졌다.
집에와서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동생한테 카톡이 왔다. 갑자기 할머니랑 통화를 시켜주겠다고 한다. 왠일인지? 최근 몇년간 먼저 연락오거나 한적이 없는 앤데.. 엄마가 시켰나? 아무튼, 그렇게 뉴질랜드 온 이후 처음으로 할머니 얼굴을 보게 되었다. 누워계시던 할머니를 굳이 깨우며 카메라를 갖다대는 동생. 화면에 할머니 얼굴이 나오고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몇개월 사이 부쩍 나이드신게 느껴졌다.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손녀딸 전화왔다고 누워계시다가 일어나 앉으셨다. 잠깐의 통화였지만 할머니 웃는 모습 사진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전화 끊기 직전에 내가 어떻게든 사랑한다고 머리위로 하트를 만들어 보려는데 한손으로 폰을 쥐고 있어서 반쪽짜리 하트밖에 만들지 못했다. 할머니가 못 알아보실거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할머니가 양손으로 머리위 하트를 만들어 보여주신다.
할머니와의 통화를 끊고나니 갑자기 급격하게 외로워졌다. 한국이 그리웠다. 내가 원해서 부산을 떠났고, 내가 그토록 원하던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 거지만 나는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멀리에 두고 살아가길 선택해야하는 걸까. 왜 그래야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갑자기 가족들과 친구들, 전부 다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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