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여유롭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아침 일찍 눈떠서부터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할일을 하고 약속을 가고 밥을 차려먹고 쉬지않고 움직여도 전혀 서두르지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 시간을 즐겁게 임하는 날이 있는 반면에, 여유로운 듯 늦게 일어나서 겨우 하나의 약속만 있었던 날이 오히려 더 여유없이 느껴지는날이 있다.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 여유로운 마음을 어떻게 가지는건지가 의문이다.
오늘도 살짝 불안하고 급한 마음으로 12시가 넘어 겨우 집에서 나왔다. 카페에 앉아 오늘해야될 구몬학습지를 푸는데 요며칠 또 잊어버렸던 여유를 다시 찾은 기분을 느꼈다. 이번주부터 한단계 높아진 레벨 덕분에 학습지 푸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었는데 하나하나 꼼꼼히 내것으로 만드는데 집중하다보니 얼마나 했는지보다 조금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뭔가 배운게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빨리 익혀야하는 것이 맞긴하지만 일단 1년 동안은 당장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여유를 좀 가지고 꾸준히 하면 될것같다.
이렇게 매일 꾸준히 뭔가를 하고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같다. 많은 시간을 들이지않아도 뭔가 든든한 기분에 여유가 생기나보다.
문제는 유튜브나 예능에 한번 빠지고나면 같은 크기의 즐거움이라도 지속감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지금 이 즐거움(자기개발)의 매력을 금새 잊어버리는것같다.
ㄷㅇ씨 만나기 30분전 인터넷으로 근처 이자카야 검색을 해서 꽤 괜찮아보이는 곳을 찾아놓고 시간맞춰 역앞으로 갔다. 오픈 시간이 6시라 좀 늦게 보자고할랬는데 이미 출발했대서 천천히 오라고했다.
거의 한달만에 ㄷㅇ씨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ㅋㅋ 마스크 끼고 오는데 어쩜 잘생겨보이기까지했다 ㅋㅋ
만나서부터 시작된 수다는 헤어지기 직전까지 끊김이 없었다. 밀린 근황부터 시작해서 어린시절 자라온 이야기, 살고싶은 집, 개인적으로 친구와 싸운 이야기, 서로의 가치관 등등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쉴새없이 나누었다. 대화가 정말 고팠었는데 속이 뻥뚫리는 기분이었다.
6시 땡하자마자 가게 앞 불이 켜졌다. 아기자기하고 딱 일본 분위기의 이자카야였다.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있고 가격까지 저렴한데다 ㄷㅇ씨와의 대화까지 즐거우니 너무 완벽했다.
어제 저녁 친구와 통화하다 싸웠는데 그 일로 나한테 조언을 구할게 있단다. 요즘 회사일때문에 힘들어서 친구에게 털어놓았는데 그 친구는 자기를 너무 답답해 한단다. 일을 돈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친구여서 일에 욕심을 가지고 야근까지 하며 힘들어하는 ㄷㅇ씨가 이해가가질 않는 것이다. 문제는 그 친구의 말투가 너무 과했다는 것인데 평소같았으면 넘겼을 말을 어제는 ㄷㅇ씨도 못참고 욕을 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자기가 먼저 사과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그게 질문이었다. 그 친구가 정말 자길 생각하는 마음에서 한 말인줄은 알지만 선을 넘어서 지적질하는 방식의 말투는 예전부터 마음에 안들었다며 계속 받아주다보니까 좋은줄 착각하는 것같다면서 이번기회에 정도라는 것을 좀 알았으면하는 마음도 있단다.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나라면 진심으로 그 친구한테 사과할거라고. 그친구가 뭐라고대답하든 말든 어쨌든 욱해서 욕하고 그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한건 내 잘못이니 진심을 담아서 사과를 해야한다고했다. 그 친구의 그런 언행이 마음에 안들었으면 처음부터 말을 했어야했는데 그러질 못하고 계속 받아줘왔고 그랬으면 어제도 똑같이 받아줬어야했는데 최근 받은 스트레스로 ㄷㅇ씨도 결국 참지못하고 욕을 했으니 그건 ㄷㅇ씨의 잘못이라고했다. 사과를 제대로 하고난 뒤 대신 앞으로 그 친구와는 두번다시 그런 주제로 말을 꺼내지 않으면된다고했다. 그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고 친하다고 생각되면 힘든일이 있을때 자신만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그대로 따라주길 강요하는 스타일인 것 같은데 그걸 ㄷㅇ씨가 싫다고 바꿀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 친구가 좋은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있으니 사과한 후에 같은 일을 다시 만들지만 않으면 된다고했다.
대화도중 뜬금없이 자기 집 근처 모델하우스가 있는데 같이 보러가겠냐길래 좀 놀랬다. 맘 통하고 가까운 사이에 자기 사는 동네나 좋아하는 거 보여주는걸 좋아한단다. 이용진(?)대리였나 이젠 이름마저 가물가물한 전남친이 생각났다. 자기 살던 동네, 다니던 학교를 보여주고싶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게 어떤마음인건지 공감이 안된다. 좋아했던 남자친구의 추억장소였음에도 아무런 감흥이없었는데 미안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인 기분이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해봤다. 추억의 장소는 본인들에게나 그렇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래도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곳인데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 걸까. 그러다보니 문득 뉴질랜드에 있을 때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왔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 올렸던 인스타글이다.
“친구에게 나의 이곳 생활과 또다른 내 친구들을 소개시켜주고 내가 사는 공간, 내가 먹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다.”
짧고 굵게 한잔씩하고 나와서 2차로 카페를갔다. ㄷㅇ씨는 요즘 처음으로 일하게된 겐바의 일이 너무 힘든가보다. 기존 코드가 생소한 코볼로 되있는데다 복잡하고 규모가 커서 분석하는데 아웃풋은 제대로 안나오고 의지가 될만한 동료들도, 선배도 없단다. 거기다 프로그램 특성상 폐쇠적이고 회사건물도 도쿄 외각에 있어 거의 시골이란다. 매일 9시까지 야근에 9월까지 앞으로도 더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단다. 들으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긍정적으로 여길만한게 별로 없어서 내가 다 안타까웠다. 신입으로 들어가서 다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지를 알기에...
담배피러간사이에 어떤말을 해주는게 현재 ㄷㅇ씨의 상황에 도움이 될까 잠깐 고민하다가 실제로 내가 요즘 사용하고있는 마인드 컨트롤을 이야기해주었다.
회사 출근했을 때와 퇴근했을 때를 완전하게 분리시켜야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일이 잘 안풀리고 상사와 사이가 안좋고 내 실력이 부족한것같은 것이 퇴근 후에도 계속 이어지게되면 내 인생 전체에 있어서 난 부족한 사람이고 인간관계도 안좋은 그런 사람인것같은 착각을 하게된다. 회사생활은 내 인생, 내 하루의 일부분일 뿐이지 나를 정의내려주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직장인, 개발자로서의 나로 살고 퇴근 후, 주말 이틀동안은 완벽히 또다른 나로 살아가야한다. 그래야지 나 자신을 잃지않고 회사라는 것에 잠식되지 않는다.
카페에서 나와서 모델하우스를 보러 오쿠보로 다시 가려고하니까 시간이 너무 늦어서 고민끝에 내일 가자고했다. ㄷㅇ씨 표정이 별로 안좋은걸 보니 오늘 너무 가고싶은가보다 ㅋㅋ
아쉬운 마음에 집까지 같이 걸어갔다. 가면서 사실은 더 놀다 들어가자고 앙탈부리고싶은거 참는거라며 본심을 드러냈다 ㅋㅋ 결국 조금 더 걷기로하고 평소 가보고싶었던 골목 구경을 했다. 신기한게 ㄷㅇ씨도 집 구경하는 걸 좋아한단다. ㄷㅇ씨랑은 참 비슷한 구석이 많은것같다. 그런데 또 밤낮 좋아하는건 정 반대였다 ㅋㅋ 난 밝고 햇빛쨍쨍 내리째는게 좋은데 ㄷㅇ씨는 반대로 밤이되야 집중력도 높아지고 끝이 다가오는 느낌이 좋단다.
끝방 언니가 어두운걸 좋아하는 걸 보고 조금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었는데 오늘 ㄷㅇ씨와 이야기해보면서 어느것이 옳고 나은것이 아니라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사는 사람도 있는거구나, 나와 다른 가치관을 받아드리는 연습이 되었다. 알렉스의 말처럼 “내가 나여서, 너는 너여서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 일이니”
집을 구경한다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다양한 모습의 집들을 밖에서 본다는 건 나의 호기심을 엄청나게 자극시키는 활동이다. 저마다의 가치관과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을 꽁꽁 품고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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