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8 수
오전에 유이를 만나 영어공부를 했다. 오늘따라 왠지모르게 공부하는 동안 유이가 짜증을 많이냈다. 왜지... 내 목소리때문인가 싶기도하다. 원래는 내 목소리 듣고서 잘 따라했었는데 오늘은 내 목소리 상태가 이러니... 한시간반정도 열심히 하고 나가서 호떡을 사먹었다. 뭔지 몰랐는데 넘버원팬케익이라고 오클랜드에서 엄청 유명하다길래 갔더니 한국인이 날 알아보고 바로 설명을 해줬다. 진짜 한국 호떡이었다. 난 오리지날 먹고 유이는 치킨들어간걸 먹었다.
카페안에선 먹을 수 없어 입구에 앉아 먹는데 유이가 갑자기 자기 담배 피기시작했다는 커밍아웃을 했다. 같이 프로바도에서 카요친구들이랑 전자담배 핀 이후로 술자리에서 미키랑 단둘이 자주 나가는걸보고 어느정돈 눈치채고있었다. 한달됬단다. 그런데 그게 미키가 담배 한갑을 주면서 펴보라고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이었다. 남자문제에 대해선 그렇게 싸고돌더니 담배는 뭐가 좋은거라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한테 그걸 권하는거지? 물론 유이의 선택이기도 했지만 100%는 아니었다고본다. 나도 확실히 나이가 들었는지 돌아보면 20대 초반이면 아직은 스스로의 판단력이 조금 흐린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수업까지 안가고 오늘은 하루종일 유이랑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이야기부터 서로의 가족사까지 안되는 영어로 어떻게 그리 깊은 대화를 나눌수있었던건지 신기하다. 아버지는 유이가 태어나고 얼마안되 이혼을 하셔서 알지도 못한단다. 어릴때부터 엄청 가난해서 언제나 늘 돈이 가장 중요했단다. 남자나 가족사나 많은 것들이 나와 비슷했는데 그중 다른것 한가지가 있었다. 분명 우리집도 부유하지 않았지만 난 단 한번도 내가 어렸을 때 가난했다고 생각해본 적이없고 돈에 크게 관심을 두지않는 다는 것.
암튼 그래서 남자를 더 못믿는 것같았다. 유이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어야하는데 꼰대같이 엄청 설교를 했던 것같다... 내가 뭐라고ㅠㅠ 담배 얘기부터 남자, 가족 이야기까지... 안타까움에 계속 말해주고싶었던 것같다. 유이가 아직 22살밖에 안됬으니 충분히 다 모두 리셋(?)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자꾸만 나쁜남자들만 꼬이는 것도, 나쁜 길인줄도 모르고 걸어가려는것도 모두다 안타까웠다.
유이가 가고나서 블로그 작성하다가 한국 친구들 단톡방에 불이 붙어서 한참 또 수다를 떨었다. 친구 중 한명이 보이스피싱에 당할뻔했다. 나한테 했던 수법 고대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전화가 와 대포통장이 개설되 1억원이 들어가있으니 자기들에게 얼마씩 돈을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걸 택시까지타고 은행으로 가는도중에 겨우 사기란걸 알게되어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단다.
아스카에게 전화가 와서 오늘 몇시에 바에 갈건지 계획을 물었다. 7시넘어 도착한다기에 혼자인 나에겐 뭐 별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알겠다고 그때보자고했다. 미키에게도 연락을 해봤다. 솔직히 아직 껄끄러웠다. 별로 물어보기싫었지만 관계 더 틀어버리고싶지않아서 어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참있다 짤막하게 집이라고 답이왔다. 오늘 바 가냐고, 하니랑 같이 올 생각이냐니까 그렇단다. 나중에 보자는 말에도 더이상 답이없었다. 뭐 자기도 기분 상했겠지. 하지만 별로 신경쓰고싶지않았다.
좀 일찍 Bangalo8에 가 있을 생각에 5시 좀 넘어 카페를 나와 도서관에가서 심리학관련 얇은 잡지를 빌렸다. 비가 흩날리는 오클랜드 시내를 10cm 힐을 신고서 Bar로 향했다. 문득 뉴질랜드에서 살고있는 30대 초반 여성이라니... 어린시절 나로선 절대 꿈꿀 수 없었을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몰라도 우산을 쓴채 비에 젖은 길과 함께 항구를 바라보는데 내 자신이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완전 뜬금없다.....) 어찌보면 이 모든 순간들이 특별하고 감사한 순간들이었다.
바에 들어서니 오늘도 역시나 조용했다. 맥주와 햄버거를 주문해 테라스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음악을 들으며 도서관에서 빌린 잡지를 읽었다. 심리학쪽은 또 처음이다보니 반페이지 읽는데만해도 한참이 걸렸다.
비가 오는데다 바람까지 불어오니 슬슬 추워졌다. 옷을 좀더 싸매었지만 자리를 옮기진 않았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움직이고싶지않았다. 노른해질때쯤 미키가 하니와 함께 도착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대했는데 하니 표정이 일단 굳어있었다. 내 기분엔 둘이 내 얘기를 한것같았다. 내가 하니를 별로 맘에 안들어한다는거라든지 어제 있었던 메시지일이라던지. 참 사람 볼줄 모른다는 생각이들었다. 솔직히 질투일 수도있다. 나에게 그렇게 잘 해줄때는 언제고 새로운 친구 나타나니 쪼로록 옮겨가는건지. 아마 다 똑같은 과정이 있지않았을까싶다. 처음엔 아스카, 다음엔 유이, 그리고 나. '다같이 친하게 지내는거지~'라고 한다면 할말없지만 지금까지 꼭 한명하고만 붙어서 챙겨주고하는 식의 관계를 보여줬기때문에 눈에 띌수밖에없다.
아마 과거에 친구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던 스타일인 것 같다.
한국인인 하니는 애가 너무 왠지 모르게 내 스타일이아니었다. 고생 안하고 자란듯한 느낌? 거기다 계속 한국말을 쓰니까 별로 함께 대화하고싶은 생각이 안들었다.
방갈로8에 있는 동안 거의 따로놀았던 것 같다. 나는 아스카랑 미키는 하니랑.
9시가 넘어 다들 프로바도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나도 갈 생각이었는데 미키가 자꾸 물어본 통에 결국 흔들려서 그냥 집에가겠다고했다. 사실 이 목소리로 그 시끄러운 바에 간다는건 무리였다.
이번주 주말에 약속이 너무 많이 잡혔다. 일마치고 가야하는거라 갈수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다.
입술에 물집, 잇몸, 편도도 붓고 성대 다 망가지고 만신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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